- 보이지 않는 ‘음수’의 정체를 밝혀라!  
- 잃어버린 자산, 음수(-)로 표현해요 
- 보이지 않는 수 '음수' 
-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어!” 
- 피콕“ 음수는 형식적인 수로 정하자” 

▲[톡톡 매거진] 'STUDY UP'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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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음수’의 정체를 밝혀라!  
농경사회에서는 소가 매우 소중한 자산이었어요. 평소에는 농사일을 도우며 미래에는 부를 책임져 줄 적금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외양간이 낡아 소가 갑자기 탈출해버렸다면? 아마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에 휩싸일 거예요. 소중한 재산이 없어진 것도 모자라 외양간을 튼튼하게 고치는 데도 돈을 써야 하니까요.  

즉, 0이 된 재산이 추가로 더 없어지는 상황이 돼 버립니다. 이럴 때 '0보다 더 작은 수’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는 어떤 일을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사건이 벌어진 후에 후회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외양간이 허술해 소는 이미 탈출했는데 다시 외양간을 고친다고 소가 돌아올 리는 없습니다. 미리 외양간을 고쳐놓았더라면 소중한 재산을 잃고 나서 후회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이 속담은 모든 것을 잃은 후에 실수를 만회하려고 애쓰는 우둔한 사람을 강하게 질책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산, 음수(-)로 표현해요 
농부는 소를 잃어버려 자산이 ‘0’이 됐는데, 거기다 외양간 고치는 비용까지 들여야 하는 상황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0보다 더 손해를 보는 상황이죠. 선조들은 손해를 본다는 것, 자산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하고 생각했을까요?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음수’ 의 개념입니다.   

늘어나는 재산은 덧셈과 곱셈으로 충분히 계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소를 잃어버린데다가, 생각지도 못한 외양간까지 고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이때 음수를 활용하면 자산을 얼마나 손해봤는지 계산할 수 있어요. 만약 소 한 마리 가격이 500만원이라고 하면, 소 한 마리 가진 사람의 자산은 총 500만원이겠죠? 그런데 있던 소가 없어졌어요. 그러면 500-500, 0이돼요. 여기에 외양간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이 100만원이라고 한다면, 0에서 100을 뺀, 0-100, 즉 -100만원이 된답니다.    

보이지 않는 수 '음수' 
지금 우리에겐 음수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들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0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음수란 도저히 상상 불가한 수의 세계였기 때문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0’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도 오래걸렸는데, 그것보다 더 적은 숫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던 거죠.  

동양의 수학은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하고, 상인들이 거래를 하고 장부를 작성할 때나, 곡식과 가축을 관리하는 등 현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어요. 음수 개념도 개인의 빚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음수는 현존하는 동양의 가장 오래된 중국의 수학서 <구장산술>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죠. <구장산술>에서는 양수와 음수의 덧셈과 뺄셈 법칙인 ‘정부술(正負術)’로 표현했어요.  

이것은 가축을 사고팔 때 벌어들인 돈과 지급할 돈을 양수와 음수로 기록한 데서 유래했어요. 정부술에서 ‘정(正)’은 양수를 ‘부(負)’는 음수를 나타냈어요. 또한 양수인 정은 빨간색, 음수인 부는 검은색의 산대라는 나뭇가지로 사고파는 것을 표기했습니다.    

그 다음 음수가 나타난 기록은 7세기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인도에서는 재산과 부채, 전진과 후퇴를 +와 -개념으로 나타냈습니다. 인도의 대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브라마굽타는 음수가 들어간 사칙연산에 관한 책을 남겼는데요.  

이 책을 살펴보면 브라마굽타는 음수의 사칙연산을 통해 수학에 0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을 알 수 있어요. -1(빚)+1(재산)=0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거예요.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어!” 
특히 비교적 빨리 음수의 개념을 사용하던 동양과는 다르게 음수의 존재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던 유럽은 음수를 받아들이는 데 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확률의 아버지 파스칼(1623~1662)조차도 음수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0보다 작은 숫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1724년 화씨온도계를 만든 독일의 물리학자 파렌하이트(1686~1736)는 음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화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 가급적 당시의 기준점 이하의 수치가 나오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화씨는 섭씨와 달라 영하의 온도를 표시할 때 웬만해서는 양수로 쓸 수 있어요. 섭씨 -18℃에 해당하는 화씨온도는 0°F(화씨)입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음수는 새로운 평가를 받게 돼요. 수학에 좌표의 개념을 도입한 데카르트는 좌표 위에 0을 기점으로 음수를 표현하고 정수라는 수 체계를 만듭니다. 그렇지만 그는 0보다 작은 음수를 잘못된 수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데카르트가 좌표를 만든 이후 함수를 탄생시키고 수학의 한 분야인 미적분의 기초를 세웠지만 음수는 여전히 환영받지 못했죠.  

프랑스의 신학자 아르노는 (-1) : 1 = 1 :(-1)라는 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어요. 작은 것과 큰 것의 비가, 어떻게 큰 것과 작은 것의 비와 같을 수 있냐는 것이죠. 당시 음수가 ‘이미 틀린 것’이라고 생각해 경계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발언도 아니에요.  

이 밖에도 음수를 음수로 곱하거나 나누었을 때 양수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수학자가 비판했어요. 음수를 빚으로 설명하자면 빚이 두 배로 늘어났는데 재산이 되어버린 꼴이니까요.  

이처럼 유럽에서 음수는 수학자와 과학자들조차도 꺼릴 만큼 매우 불편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리고 수 세기 동안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채 19세기를 맞게 됩니다.   

피콕“ 음수는 형식적인 수로 정하자” 
음수가 모든 불신을 끝내고 하나의 개념으로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영국의 수학자 피콕의 힘이 컸어요. 피콕은 음수를 실제로 셀 수 있거나 양적인 수로서 생각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형식적이고 개념적인 숫자로 정리했습니다. 이후 음수는 수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현대 수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선조들의 지혜가 듬뿍 담긴 속담 안에는 다양한 원리가 들어있어요. 어떠한 시각으로 속담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도 속담이 주는 의미는 새로워집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속담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음수의 의미, 이젠 확실히 이해하겠죠?  

실재(實在) | 실제로 존재함  

이 기사는 [톡톡 매거진] 'SYUDY UP'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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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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